출처 : http://blog.hani.co.kr/bonbon/46481

0.JPG
제목에서 `재벌만이 지을 수 있는 집'이라고 했으니 가구가 비싼 것인가, 뭐 이런 생각을 먼저 하실 수도 있습니다.
분명 가구는 비싸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집은 건축적으로 좀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먼저, 지붕에서 떨어지는 빛입니다.
천장에 달려있는 긴 직사각형은 전등이 아닙니다. 천창입니다.
물론 밤에는 등이 되기도 합니다만, 이 집은 저런 천창이 무려 55개가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낮이면 저 벽에 드리우는 햇빛이 집 안에 긴 빛 무늬를 만들고, 해의 높이 변화에 따라 모양이 변해갑니다.
두번째, 오른쪽에 있는 문입니다.
손잡이를 보시면 이 문이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문이 평면이 아니라 `ㄱ'자 모양입니다.
건축을 전공하신 분이라면 이 문을 보고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이 집은 저 ㄱ자 문으로 유명한 건축가, 스티븐 홀이 설계한 집입니다.
이 집은 하늘에 천창이 무수히 달려있는 집으로 화제가 된 모 대기업의 VIP 게스트하우스이자, 이 회사 역사를 알리는 기념관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축계에선 세계적 건축가 스티븐 홀이 설계한 집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집에 최근 다녀왔습니다.

1.JPG
대양갤러리는 한국에서 가장 부자들이 많이 산다는 성북동에 있었습니다.
성북동이나 평창동처럼 부자들이 사는 단독주택 동네는 특징이 있습니다. 언덕길이란 점입니다. 땅이 언덕이면 토목공사를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대신 앞집이 자기 집 전망을 가리지 않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사지를 선호하죠.
이 동네 중간쯤에 저 집이 있었습니다.

외부에서 본 모습은 성채처럼 보였습니다. 길에선 줄무늬를 집어넣은 시멘트 옹벽만 보여 내부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1-1.JPG
위쪽에서 보니 집 내부가 살짝 보입니다. 밝은 회색 콘크리트와 대비가 되는 붉은 색 건물이 보입니다.

대문도 집의 외장재인 강판과 같은 재질의 붉은 색 대문입니다.

2-1.JPG
이 옹벽은 괜찮아보였습니다. 그 이유는 가로로 길게 낸 줄무늬 패턴 처리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이 높고 넓은 옹벽을 돌이나 별 무늬가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로 표현했다면 지나치게 위압적이고 답답해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줄무늬를 넣음으로해서 콘크리트란 재료임에도 느낌이 좀 더 경쾌해집니다.
그런데, 벽 앞쪽에 왠 계단이 있습니다.

계단인데 경사는 너무 가파르고 그 위는 문처럼 모양을 냈지만 문은 없습니다.

결국 가짜 계단? 그리고 그 위에는 왠 대접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무엇인가 물어보니 새들이 물을 마시라고 놓아둔 물그릇이었다고 합니다.

동시에 단조로울 수 있는 수직벽에 디자인 요소를 집어넣어 재미를 더한 것으로 보입니다.

3.JPG
▲ 사진=이래건축

자, 이제 대문입니다.
건축가가 설계한 집, 특히 비싼 집일수록 눈여겨 보게 되는 것들이 대문과 현관, 집 안의 나무 문 등을 비롯한 문입니다. 또 하나는 창호(창문)입니다. 이 두가지는 사람이 직접 만지는 부분이어서 촉감도 중요하고, 또 집의 기능면에서도 아주 중요하며, 디자인 측면에선 그 어떤 인테리어 요소들보다도 강력합니다. 그 말은 `좋은 것으로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뜻입니다.
이 집은 일단 대문이 딱 봐도 디자인한 맞춤 대문임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이 문도 스티븐 홀이 디자인한 것입니다.
문에는 가늘고 긴 직사각형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이 집은 천장에 천창을 낸 것이 컨셉이고, 그 컨셉을 대문에도 적용했습니다. 일종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라고 하겠습니다.

3-1.JPG
문은 이렇게 열리는 군요. 사람만 들어가면 왼쪽 작은 문만, 차가 들어오면 오른쪽 문을 엽니다.
그리고 드디어 안에 집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4.jpg
▲ 사진=Iwan Baan

내부입니다. 단순하고 깔끔한 디자인입니다.

특이하게 마당이 없고 돌바닥? 이 동네가 경사지다보니 여기는 입구지만 도면상으로는 `지하층'입니다. 그리고 저 위에 진짜 마당이 있는 2층 같은 1층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과 뒤가 1층의 차이가 있는 집입니다.
보시면 왼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사진에 나오지 않는 오른쪽으로도 마당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집 안에서도 바깥 옹벽과 같은 시멘트 무늬로 기단이 통일 되어있고, 윗부분 집 몸체는 붉은색 강판으로 처리했습니다.
문 이야기를 했으니 여기서도 오른쪽 주차장 문을 봐야겠죠. 콘크리트와 비슷한 색인데, 역시 길고 가는 구멍을 뚫었습니다. 이것도 스티븐 홀이 디자인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건축 사진은 대부분 해질녘 하늘 빛이 물들고, 집 내부에 불이 켜저 빛나는 시점에 잘 찍습니다. 그런 저녁 풍경 한 컷입니다.

4-1.JPG
▲ 사진=이래건축


주차장 문 구멍 안에서 빛이 새어나오면서 철문이 디자인 작품처럼 변했습니다.

이런 디테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비싼 집의 묘미겠지요.

5.JPG
▲ 사진=이래건축

안에 들어와 대문을 다시 봅니다. 길에서 보일 때는 완전한 평면으로 처리했는데, 안쪽에는 튀어나오게 입체 면 분할을 해서 느낌에 변화를 줬습니다. 그리고 눈길은 자연스럽게 우체통으로 향합니다.

6.JPG
▲ 사진=이래건축

우체통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동으로 만들었는데, 역시 디자인이 독특합니다.

문 자체가 아주 단순한 디자인이니 우체통으로 포인트를 준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체통은 한쪽을 더 넓게 만들어 비정형으로 했습니다. 이것도 스티븐 홀 디자인.

16.JPG
현관입니다. 건축 대가들은 대부분 깔끔하고 단순한 디자인을 좋아하니 여기도 단순합니다.

오히려 궁금해지는 것은 오른쪽, 작은 연못이 있는 벽에 부조처럼 처리된 부분입니다.

6-0.JPG
수조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일부러 연도 아주 조금만 넣어 더 도드라지게 했습니다. 그 연을 바라보며 물이 양쪽으로 흘러나옵니다. 그 뒤로는 벽에 무슨 무늬가 그려져 있습니다.

저 벽에 그린 그림은 실은 이 집의 배치도입니다. 세 개의 덩어리는 집 3개 동이고, 그 위에 다시 가늘고 길게 뚫린 직사각형이 계속 말씀드리는 빛이 떨어지는 천창입니다.
이 작은 수경공간은 밤이면 이렇게 보입니다.

6-2.JPG
▲ 사진=이래건축

건축는 재료와 빛으로 만들어내는 예술입니다. 건축가들은 그래서 빛과 건물 형태의 관계를 늘 중시합니다.

어디에 불을 달아야 재질 표면에 빛이 어떤 무늬를 만드는지, 패턴이 바뀌고 빛의 성질이 바뀌면서 느낌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런 것들에 매달리죠.
이 집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콘크리트를 홈을 내서 처리한 표면의 무늬에 있습니다. 이 수경공간을 옆에서 보면 그 처리를 잘 아실 수 있습니다.

6-4.jpg
▲ 사진=Iwan Baan

뭐 이쯤 되면 이제 척 감이 오시겠지만, 저 물이 졸졸 나오는 금속 조형물도 스티븐 홀이 디자인했습니다.

건축가는 집만 설계한다? 그렇지 않습니다. 집 안에 필요한 모든 것을 설계합니다. 물론 인테리어나 가구, 조형물 전문 디자이너들도 따로 있습니다만 건축가들은 거의 대부분 가구 디자이너들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퀴즈 하나 더.

저 콘크리트 벽에 파이프를 반 자른 것처럼 움푹 들어간 요철 무늬에서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6-5.JPG
당연히 대나무 모양이 떠오르실 겁니다.

맞습니다. 이 집은 거푸집으로 콘크리트 벽을 만들 때 실제 대나무로 모양을 냈습니다.

허나, 저렇게 곧고 길고 두께가 일정한 대나무가 있을리는 없지요. 그래서 자른 대나무들을 이어서 홈 모양을 낸 것입니다. 잘라 연결한 부분은 마치 대나무의 마디처럼 보입니다. 잘라서 연결해 간격이 조금씩 다릅니다. 노출 콘크리트 거푸집을 짤 때 나무판을 대어 나뭇결 무늬를 내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집 구경입니다. 집 안보다 먼저 마당을 봐야 하니, 오른쪽 건물 옆으로 정원을 향해 올라갑니다.

7.jpg
▲ 사진=이래건축


옆을 돌아 윗쪽에 있는 진짜 마당을 향해 갑니다. 마당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 경치를 최대한 숨깁니다.
무슨 장면이 펼쳐질지 모르게 해서 궁금함을 극대화하고, 그래서 일부로 동선도 길고 좁게 처리하고, 마지막 마당에 도착했을 때 확 트이는 공간이 펼쳐지면서 비로소 또 다른 공간과 만나는 순간을 최대한 고조시키는 뭐 그런 과정이라고 합시다.
윗 사진에서 이 길이 넓어 보이지만 그건 카메라의 효과이고 실제로는 그냥 집 옆과 담 사잇길입니다.

그리고 코너를 도는 순간 이런 모습이 나옵니다.

8.jpg
▲ 사진=Iwan Baan

마당이면 당연히 잔디밭을 예상할텐데 녹색 잔디가 아니라 파란 물이 등장합니다.
이 코너마저 지나가면 비로소 이 집 정원이 그 모습 전체를 보여줍니다. 바로 이 모습.

9.jpg
▲ 사진=Iwan Baan

아랫층에서 보이던 모습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반전 효과입니다.
아래가 딱딱하고 단순한 콘크리트의 공간이었다면, 위는 물의 공간입니다. 그 대비가 이 집의 얼굴을 2개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집은 실은 물 위에 세 덩어리의 공간이 섬처럼 솟아올라 있는 집인 것입니다. 물론 저 세 동의 건물은 아랫층에선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9-1.JPG
▲ 사진=이래건축

물은 늘 사람을 사로잡는 요소입니다. 특히 건축에서 물과 건물의 대비는 참으로 고전적이면서도 늘 매력적인 처리입니다.
물 위로 집이 비치는 모습이 데칼코마니 효과를 내고, 그래서 더 집을 멋져 보이게 하지요.

특히 사진으로 보면 실제보다 훨씬 멋져 보이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밤에는 이런 효과가 더욱 강해집니다.

10.JPG
▲ 사진=이래건축


바람이 멎어 수면이 잔잔해지니 거울처럼 반영이 됩니다. 집에 조명이 들어와서 더욱 근사해졌습니다.
이런 수경공간은 보기에는 환상적이지만, 한국에선 실은 최악입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 `수도요금'이 많이 나옵니다.
또한 `관리'가 장난이 아닙니다. 낙옆이 떨어지거나 쓰레기가 둥둥 뜨면 분위기를 완전히 잡치니 늘 건져줘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한국의 사계절입니다.
봄 가을에는 참 좋은데 비가 억수로 오는 여름 장마 때면 물 넘치랴, 구정물 되랴 신경 써야 합니다.
겨울엔  불편합니다. 물이 얼기 십상이고 황량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런 멋진 수경은, 정말 비용 대비 실용도는 떨어집니다. 실제 실용성은 전무한 것입니다.

하지만 엄청나게 폼이 나죠. 사진발은 끝내줍니다. 그러니 돈으로 해결해야 가능합니다.

곧 수도요금 신경 안쓰고, 정원사를 따로 둘 수 있고, 저런 공사 비용을 아낌없이 지불할 수 있는 건축주만이 가능합니다.
재벌이 만든 회사 VIP용 공간이니 가능한 것입니다.

10-2.JPG
▲ 사진=이래건축
앞서 말씀드렸지만 건물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빛'입니다. 이 빛이 만들어내는 무늬가 그림자입니다.
건축과 조경은 그래서 나무의 그림자를 중요한 디자인 요소로 삼습니다. 이 집도 그렇습니다.
저 못을 보고 반대쪽 뒤로 가는 곳에는 대나무를 심었는데(콘크리트 표면과 맞춘 또 하나의 컨셉이군요), 역시 벽에 대나무 그림자가 흔들거립니다.

10-3.JPG
개인적으로 이렇게 좁고 움푹하게 들어가 빛이 모자란 듯한 숨은 공간을 좋아해 멋진 연못보다도 이 공간이 맘에 들었습니다.
이쪽으로 돌아가니 이번에는 건물 사이로 못이 보입니다.

11.JPG
높은 지대의 동네이니 역시 전망이 좋습니다. 서울을 둘러싼 명산들이 보이고, 수면 위로는 소나무가 비칩니다.

어차피 이 집은 최대한의 시각적 과시를 구현하는 공간이고, 돈에 구애받지 않고 디자인을 시도하는 집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장면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저 소나무입니다.
수형이 더 예쁜 나무였면 실루엣 효과와 반영 효과가 훨씬 근사할텐데 우리 집도 아니니 패스.

11-1.jpg
▲ 사진=이래건축
여기도 해가 저물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뭐 그런 사진입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부잣집은 창문이 좋다고 했으니 창문을 뭘 썼나 그런 쪽에 자꾸 눈이 갑니다. 그래서 이런 실험을...

12.JPG
재벌 회사에서 지었으니 당연히 창호는 좋은 다중창 같았습니다.

2중창과 3중창은 50%의 단열 효과가 있을 것 같지만 실은 2배의 차이가 납니다. 2중 창이면 유리와 유리 사이의 공기층이 하나인데, 3중창이 되면 유리와 유리와 유리가 있어 그 사이 공기층이 2개가 됩니다. 그래서 효과가 배로 좋죠. 물론 가격도 그 이상으로 뛰어오릅니다.
유리와 유리 사이 공기층에는 아르곤 가스를 넣는데, 이 아르곤이 잘 안빠져나가야 좋은 창입니다.
물론 창문보다 이 집에서 더 궁금했던 것은 붉은 빛이 나는 외장재였습니다.

13.JPG
이 외피는 구리입니다. 동판인데, 부식(patina) 처리한 것었습니다. 두께는 3밀리미터.
그런데 외기에 노출되면 자연스럽게 녹이슬고 표면에 막이 생기고, 그 진행이나 색깔이 모두 같지가 않고 조금씩 달라집니다.
사진을 보시면 부분부분 색깔이 모두 다르고,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붉은 색으로 통일되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구리는 흔해 보이지만 실은 비싼 재료입니다. 그리고 건축에서 재료가 좋으면 별다른 장난을 칠 필요가 없어집니다. 재료 자체가 주는 맛이 좋아서 단순하게 처리해도 되니까요.
그러면 이제 윗쪽에서 정원 전체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다시 현관으로 내려가 집 안으로 들어갈 차례입니다.
아랫 마당으로 내려가는 길.

14.jpg
▲ 사진=Iwan Baan

그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 이번에도 문 손잡이가 독특합니다.

17.JPG


집 배치도에서 수경 공간의 형태를 분할해 손잡이를 디자인했습니다. 물론 스티븐 홀 디자인입니다.

19.JPG

▲ 사진=이래건축

내부는 지하층과 지상층이 나뉩니다.

이 곳 지하층은 이 회사의 역사를 보여주는 패널들과 소장 미술품을 전시하고, 또 문화 이벤트를 여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윗쪽 수면 위로 떠오르는 지상층은 손님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21.JPG
아래 갤러리로 내려가는 난간 손잡이가 재밌습니다.
난간은 아주 중요한 디자인 요소입니다. 안전도 책임지지만 미학도 책임져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이 난간에 많은 신경을 쓰고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해왔습니다.
이곳 난간은 디자인은 단순 그 자체인데 아래 돌과 접합부 처리가 깔끔했고, 그 형태도 아래에선 세로 방향으로 올라와 중간에서 가로 방향으로 90도 꺾여서 손잡이 부분과 만나는 디자인이었습니다.
아래쪽에서 난간 살은 가로보다 세로로 해야 구조적으로 더 많은 힘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로로만 올리면 구조적으로는 더 강해지는 대신 손잡이 부분만 두꺼워집니다. 그렇다고 가로로 하면 시각적으로 가려지는 부분이 많아지고, 또한 구조는 약해지죠. 이 난간 살은 그 절충안으로 보였습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니 패스.

22.JPG
▲ 사진=이래건축

갤러리에선 이 지점이 가장 멋졌습니다. 하얀 면과 면, 각과 각이 만나고 꺾이고 변하면서 기하를 이루는 장면. 물론 쓸데 없는 데에 관심이 많은 저는 `천장 등 처리가 깔끔하네' 같은 것에 관심이...
윗 사진은 그림을 걸기 전 자료 사진이고, 요즘에는 이렇더군요. 윗 사진 아래 이벤트(연주) 등을 위한 공간입니다.

23.JPG
저라면 저 한강 사진을 크게 프린트한 작품 대신 벽을 시원하게 비워두고 작은 액자 한 두개만 딱 걸어 시원하게 놔두면서,
저 벽을 배경으로 공연하는 사람들이 더 주목되도록 놔두겠지만,
역시 우리 집도 아니고 이 집 건축주의 취향이 서로 다른 것이니 패스.
쓸데 없는 데에 관심이 많은 저는 이번에도 저 귀여운 의자들에 눈길이 갔습니다. 이것도 스티븐 홀이 직접 디자인한....것은 아니고 골라줬다고 하더군요. 앉아보니 예상 이상으로 편했습니다.
자, 그럼 가장 궁금해하실 숙소 공간 내부로 이제야 올라갑니다.

25.jpg
▲ 사진=Iwan Baan

아래 갤러리에서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이 계단이 이 집의 디자인에선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집은 건물 셋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 장면을 물과 똑같은 높이에서 보여주는 곳이 이 계단이어서입니다.
올라가기 전, 이집의 트레이드 마크인 천창과 떨어지는 햇빛 무늬들이 잘 보이시죠?

26.JPG
이렇게 계단을 올라가면 눈 높이가 올라감에 따라 보이는 풍경들의 느낌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지붕 위 수면이 드디어 등장. 우리가 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기분을 내게 꾸몄습니다.

26-1.JPG
집 안 이곳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모습을 옆 건물에서 찍으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27.jpg
▲ 사진=Iwan Baan

그러니까 물 위로 솟은 세 개의 건물 덩어리 중 가운데 것은 계단 통로였습니다. 일종의 잠망경 같은 공간이네요.

그런데, 수면 아래로도 천창이 뚫려 있는 것 보이시죠? 수조 아래도 천창을 냈습니다. 저렇게 하면 밤에 아랫층에서 불을 켰을 때 저 수조 창으로 아래 불이 새어나오면서 조명 역할을 하지요.
물론, 저렇게 처리하려면 신경 쓰이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당장 물이 새는 하자 걱정이 떠오르지만 재벌이 일반 건축의 몇배나 되는 돈을 들여 지은 집이니 뭐. 그리고 이 집은 일반 주거가 아니라 특별한 공간이니 뭐.

28.JPG
모임이나 회의를 하는 옆쪽 공간입니다. 바깥으론 수면과 다른 건물이 보이고, 안에는 미니멀한 탁자들이 줄지어섰습니다.
매번 쓸데 없는데 관심이 많은 저는 이번에도 '이 책상이 장 누벨(세계적 유명 건축가)이구나' 따위에,..
아래 카페트는 역시 천장 광창 디자인으로 스티븐 홀이 직접....
반대편을 보면 이렇습니다.

29.JPG
내부 벽 전체를 바깥 부식동판처럼 붉은 나무로 처리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수납 공간이 전혀 안보입니다. 붙박이로 벽 속에 숨어 있습니다.
다시 반대쪽에는 빛이 훨씬 많이 들어오게 한 별도 공간이 있습니다.

30.jpg
▲ 사진=Iwan Baan


광창은 어떤지 한 번 올려다 볼까요?

29-0.JPG
사진으로 보시면 지붕의 두께가 상당한 걸 아실 수 있습니다. 지붕은 원래 두꺼워야 합니다. 열과 비와 눈을 막아야 하니까요.
여기는 연회 공간이므로 숙박 공간과는 분리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숙박 공간은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른 입구로 올라가야 합니다. 이런 계단으로.

31.jpg
▲ 사진=Iwan Baan


이 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공간은 이렇습니다.

32.jpg

▲ 사진=Iwan Baan

맨 앞에 퀴즈를 냈던 그 공간입니다.

카페트는 역시 스티븐 홀 디자인, 가구는...여러 작가의 작품 들입니다. 우선 탁자는 조지 나카시마(의 딸이 한 것이겠죠?)사의 작품이며, 왼쪽 텔레비전대는 이 건물을 스티븐 홀과 함께 작업한 이래건축의 이인호 소장이 디자인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맘에 드는 가구였습니다. 소파는...누군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 내부를 바깥에서 보면 여기입니다.

32-0.JPG

▲ 사진=이래건축

커다란 나무 문이 멋진데, 문 손잡이가 특히 좋아보입니다. 역시 스티븐 홀의 디자인으로 특별 제작.

34.JPG

▲ 사진=이래건축


그리고, 스티븐 홀 특유의 `ㄱ'자 문입니다.

35.JPG

미리 말씀드렸듯, 이 집은 스티븐 홀이란 건축가가 기본 컨셉과 디자인 요소 중 중요한 것을 정했고, 국내 파트너로 이래건축 이인호 소장이 세밀한 부분을 가다듬고 정했습니다.

여성 분들은 화장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으실텐데, 이 집은 화장실은 제법 수수합니다.

37.JPG

특이하게 타일을 세라믹이 아니라 유리로 처리했습니다. 유리는 불투명 처리한 종류인데, 빛을 머금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손을 대서 빛을 가리면, 그 부분이 어두워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38.JPG
뭐 이것도 중요한 것은 전혀 아니니 패스.

39.JPG
▲ 사진=이래건축. 줄지어선 천장 광창을 볼 수 있다.

자, 이상으로 좀 길게 이 집을 돌아보셨습니다.
이 집은 특정 기업의 소유이다보니 비공개입니다. 저도 지인 덕분에 가서 구경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블로그에서 이 집을 특별히 더 길고 자세하게 소개한 것은 전공자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실 `디테일'을 최대한 전해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건축에서 `디테일'은 사소한 마무리 처리가 아닙니다. 디테일은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의 품위와 분위기, 만듦새 모두를 좌우하는 것, 그래서 흔히 "신은 디테일에 있다"고까지 합니다.
특히 이런 특별한 집, 비싼 집은 디테일 자체가 핵심입니다. 재로 하나, 연결 부위 하나하나 조금 더 좋은 것으로 조금 더 신경써서 짓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비용이 추가되고, 다양한 전문가들을 불러야 가능합니다.
이 역사관 겸 갤러리 건물은 일반인용 건물이 전혀 아닙니다. 주거용도 아닙니다. 대기업이 회사 손님을 위해 운영하는, 전형적인 과시와 부유함을 추구하는 럭셔리 공간입니다. 게다가 세계적인 건축가 스티븐 홀이 국내에 처음 선보인 작품이란 점에서 건축계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스티븐 홀은 그동안 한국과 인연이 없었습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집 설계 경쟁 공모에서 당선되지 못했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공모에서도 아쉽게 떨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이 건물을 한 것입니다.
그는 서양 건축가이면서도 동양적인 느낌을 지니고 있고, 명쾌한 논리와 디자인으로 후배 건축가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이 집은 그가 디테일과 비용 면에서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했던 집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건축비 자체는 생각보다 아주 비싸지는 않았습니다. 고급 한옥을 짓는데 땅값 빼고 건축비만 평당 2500만원 정도가 들어가는데, 그보다는 적게 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금액이죠).
이 집은 대지나 건물 면적을 실은 더 크게 지을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건축주가 무조건 크게 짓기 보다는 규모는 알맞게 하면서 건물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에 유명 건축가에게 맡기고 디자인에 신경을 쓰는데 주력했다고 합니다. 그런 점 덕분에 디테일이 잘 살았고, 디자인은 사진으로 보면 튀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조용하게 조화를 이루는 편이었습니다.
이상으로 집구경을 마칩니다.

세상엔 사람들 숫자만큼 다양한 집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집도 있으려니 하시길.

Posted by Happynowlif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