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eyword.pressian.com/articleK.asp?guide_idx=7744
만트라는 힌두교와 불교에서 사용되는 신비한 음절이다. 힌두교에서 사용되는 산스크리트의 의미는 몇 가지로 구분되어 설명 될 수 있다. 첫째, 신의 이름을 지칭한다. 특별히 여러 신들 가운데서 선택한 신(ishta-deva)의 화신(化身, avatāra)에 주어지는 명칭이다. 이는 영적 삶의 수행을 시작하고자 하는 학습자가 스승을 찾아 가기 전에 먼저 하나의 신을 택하고 그 신명(神名)을 암송하면서 스승의 지도 아래 수행을 하게 된다. 만트라를 계속 암송함으로써 신과의 일치를 얻게 되는데, 학습자는 스승으로부터 이 거룩한 비밀을 지키도록 요청을 받는다. 만트라의 주기적인 암송은 사고(思考)를 분명하게 해 주고 꾸준한 훈련으로 신적 실현(신적 깨달음)을 가능하게 해 준다.
둘째, "위대한 언설(mahāvākya)"로서의 만트라가 있다. 이것은 베다의 최종적인 가르침으로서 『우파니샤드』의 결정적 진술인 "내가 브라만이다(Aham Brahman asmi)"라는 표현을 뜻한다. [야주르베다]의 계열에 속하는 [브리하드아라냐카 우파니샤드]에서의 이 같은 진술 외에도, [사마베다]에 속하는 [찬도기야 우파니샤드]에서의 진술인 "그것이 너다(Tat tvam asi)"라는 표현도 "위대한 언설"로서의 만트라다. 이 외에도 [아타르바 베다] 계열에 속하는 [만두키야 우파니샤드]에서 "이 자아(아트만)가 브라만이다(Ayam ātman Brahma)"라든가, [리그베다] 계열에 속하는 [아이타레야 우파니샤드]에서의 "의식이 브라만이다(Prejnānam Brahma)"라고 하는 표현들이 모두 위대한 비밀스런 언설로서의 만트라다.
셋째, 희생 제의와 관련하여 부르는 베다의 신성한 노래는 물론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베다의 거룩한 본문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베다에 기록된 본문 그 자체를 낭송함으로써 베다는 신성한 만트라가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의 만트라는 어떤 우주적 힘을 드러나게 하는 힘이 실린 음절 혹은 연속적인 음절을 지칭하는데 가끔 붓다의 이름을 지칭하기도 한다. 불교 명상의 한 형태로서 만트라를 계속적으로 반복하여 낭송하는 이러한 형태의 수행법은 다양한 불교 종파들이 시행하고 있다. 이때의 만트라는 마음을 안정되게 지켜 주고 "옴"과 같은 진동음을 통해 "신(身), 구(口), 의(意)" 삼업(三業)의 장애를 넘어 고양된 차원의 영적 수준을 체험하게 한다. 물론 만트라를 암송 할 때는 그 효과를 높이기 위해 "무드라(mudrā)와 같은 일정한 신체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이와 같이 만트라는 힌두교나 불교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마음을 높은 의식의 상태로 고양시키는 거룩한 소리나 단어 또는 구절을 뜻한다.
참조 : http://www.buruna.org/cgi/technote/read.cgi?board=jungun&y_number=53
시인이자 번역가로 유명한 류시화씨가 인도 히말라야산 자락에서 수행하고 있는 한 구루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스승은 뭔가 획기적인 가르침인 만트라(Mantra)*는 알려주지 않고 쓸데없는 일만 시키고 자신은 동굴 안에서 낮잠이나 자더란다.
어느 날 류시화는 10일이 넘도록 배운 것도 없고, 아무래도 시간낭비만 하는 것 같아 화가 잔뜩 났다. 그래서 다시 이 산자락을 내려가야겠다고 결심하고 평소에 구루가 아끼는 필수품인 물항아리를 던져 산산조각 냈다. 그리고는 쏜살같이 도망을 쳐서 산 밑으로 내려와 버스를 탔다.
그런데 차가 출발하기 직전 그 구루가 와서 열린 차창으로 류시화씨에게 3가지 만트라를 전수해 주겠다고 하여 3가지를 전해 받았다고 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뭐 대단한 가르침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잔뜩하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그랬더니!............) 구루는 손을 뻗어 류시화의 머리에 손에 얹고
첫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너 자신에게 정직하라. 세상 모든 사람과 타협할지라도 너 자신과 타협하지 말라. 그러면 누구도 그대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찾아오면, 그것들 또한 머지않아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라.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해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너는 평화로울 것이다.
셋째, 누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거든 신神이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네가 나서서 도와줘라.**
주)
* 만트라(mantra)는 문자 · 언어의 뜻이다. 인도 여러 종교적으로 그 의미를 두고 있으나 대승불교에서는 제불諸佛을 상징하는 산스크리트어 문자나 부처에 대한 찬가 및 기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특정한 말을 가리킨다. 흔히 진언眞言이라고 한다.
** 류시화,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열림원, 1996 – 정리참고
참조 : http://ask.nate.com/qna/view.html?n=8112578
만트라수련 -- 주문수련
주문수련이란 소리 내서 하는 수련법입니다. 입으로 어떤 정형화된 글을 읽음으로써 수련을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주문에 대해서 알아보면 이렇습니다.
주문이란 영어로 만트라(mantra)인데 이 만트라는 만(man)+트라(tra)로 나뉘어 집니다. 만(man)은 인간(human), 정신(mental), 마음(mind)을 뜻하고 트라(tra)는 돌보다(take care of)의 뜻입니다.
즉 이를 직역하면 마음의 도구(the indtrument of mind)라는 뜻입니다. 다시 의역하자면 내 생명을 생명의 근원으로 인도하는 안내자, 동반자(the guide which leads my mind to the source of life)라는 뜻입니다. 주문이란 본래 우주의 궁극의 소리를 본 사람(rish)이 이를 언어체계로 언어화하여 음절화 상징화시킨 것입니다. 따라서 주문을 읽게 되면 우주와 하나 됨으로써 나의 본래의 생명을 회복하고 우주와 하나로 진동하는 것입니다.
* 주문의 이해
“주문이란 영적 에너지의 핵을 형성하는 성스러운 소리의 조화입니다.”
만트라 곧 '주문(呪文)'이라 할 때의 주자는 입 口, 클 兄 자로서 입을 통해서 소리를 냄으로써 생명의 근원을 마신다는 뜻입니다. 만트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언어와 마음의 상호작용, 의식작용과 연관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주의 생명의 소리는 비자 만트라(bija mantra) 즉 우주의 종자소리, 창조의 종자 소리인 “훔” 소리와 “치” 소리입니다. 비자(bija)는 씨드(seed), 종자(種子)를 의미하는 우주의 생명의 근원소리로서 영적 에너지가 응축된 주문의 정수(essence)를 말합니다.
훔의 뜻 :무극, 陰 embracing sound: 모든 생명의 근원소리(불교사전)
치의 뜻: 태극, 陽 sound of releasing/creating: “크게 굳힌다”(大定也)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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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문의 뜻
a) 한자적인 뜻: 呪文에서 呪(빨주)는 口(입구), 황(클황, 부를황) 그리고 文(글월문), 즉 입으로 성령(聖靈)을 부르고 우주의 진기(眞氣)를 빨아들일 수 있는 글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신(造化神, 聖靈, 神明)으로부터 생명(氣運)을 받는 글, 둘째 하늘의 상제님(하느님)께 간곡히 기도하는 글(祈禱文)이라는 뜻입니다.
b) 주문(mantra)의 어원(語原): 주문은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나오는 소리, 우주의 본래 소리를 듣는 일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 그 소리를 본 사람(seer)들이 언어로 상징화(symborization)시킨 것이 비자 만트라(vija mantra)입니다. 비자는 종자(seed), 만트라는 주문이란 뜻입니다. 글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만(man)은 영어로 인간, 남자의 뜻입니다. “정신”을 뜻하는 마인드(mind)나, “정신의”라는 뜻인 멘탈(mental), 모두 같은 어원“만(man)”에서 나왔습니다.
만트라의 만(man)은 인간, 그리고 트라(tra)는 돌봐주다. 또는 도구의 뜻입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만트라란 “마음의 도구(the instrument of mind)”입니다. 이를 의역하면 중생의 마음으로부터 우리를 끌어내어, 생명의 근원으로 인도하고 돌봐주는 도구'입니다.
우리 마음을 생명의 근원으로 인도하는 안내자(the guide which leads my mind to the source of life)입니다.
[주문은 영적 에너지의 핵을 형성하는 소리(신성한 음절)의 조화입니다.
“A mantra is a combination of sacred syllables which forms a nucleus of spiritual energy.”]
2) 주문의 5가지 구성요소
1. rishi, seer : 주문을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내고 알린 자.
2. raga, melody : 멜로디, 선율, 리듬
3. devata, presiding : deity 주재신(主宰神)
4. biga, seed sound : 주문의 정수가 되는 소리
5. sakti, power : 주문의 힘(呪力)
3) 주문(mantra)은 곧 진리의 말씀(眞言)
진언은 곧 진리의 말씀이며 진리로부터 온 성구(聖句)입니다.
또 신들이 인간에게 들려 준 생명의 언어이자 깨달음의 언어입니다.
신비주의적인 술어(述語)가 아니라 진리와 지혜가 농축된 모든 소리에 대한 총지(總持)입니다. 주문은 진언의 두루 갖춤을 의미하며 지혜(智慧)를 얻기 위한 총지문(總持門)이기도 합니다.
주문엔 크게 3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일체 악(惡)을 일어나지 않게 합니다.
둘째, 선(善)을 사라지지 않게 합니다.
셋째, 선(善)을 잡아 일체의 악(惡)을 없애고 청정한 진리의 세계를 깨닫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주문은 진리의 세계를 열어내는“참된 말” 이자“도언(道言)”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불가(佛家)의 팔만사천 법문이 진언으로 되어 있어 부처님의 본심을 드러내듯 진언(주문)은 헤아릴 수 없는 가르침의 백미(白米)입니다. 왜냐하면 소리 그것은 “진리의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것만이 우리를 완전하게 해줄 수 있듯 진언(주문)은 완전한 언어이며 우리를 모순 없는 세계로 안내해 주는 훌륭한 반려자(伴侶者)입니다.
4) 신(神)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주문은 쉽게 접할 수 없는 미묘한 글자들로 이루어진 매우 특별한 언어입니다.
비코(Giambattista Vico)는 그런 언어들을 “신성한 글” 라 말했으며 옛 슈메르인이나 바빌로니아 인들은 주문을 “신통력을 가진 단어들” 이라 칭했습니다. 또 고대 신비주의학파들은 “잃어버린 말씀”, “잃어버린 화음”이라했으며 베다에선“Holy Nad”, 이슬람 현자들은 “카르마(Karma)”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정의는 주문은 신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바꾼 매우 특별한 힘을 보유한 “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즉 형이상학(비물질계)을 형이하학(물질계)으로 끌어내린 중간자라 할 수 있습니다. 신들의 성언(聖言)을 인간의 성언(聖言)으로 정립시킨 것입니다.
주문은 위대한 성자들에 의해 깊은 명상상태에서 발견된 음절이나 단어 또는 단어들의 집합체들이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그런 언어들이 아니다. 깊은 초 의식 상태에서 내부로부터 수신된 만트라의 음(音)들은 구도자들을 점점 더 깊이 이끌어 완전한 고요의 상태에 도달하게 만든다. (『히말라야 성자들』 中)
이렇게 초 의식 상태에서 재건된 주문은 특별한 힘을 보유하게 됩니다.
마치 알라딘의 요술램프에 갇힌 요정처럼 신(神)은 주문에 응감하며 누군가가 마음을 한데 모아 부르기만 하면 그 즉시 모습을 현실계에 드러내 보입니다. 단순히 읊조리는 것만으로도 현화(現化)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토록 쉽게 신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신과의 만남은 곧 자기 자신과의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왜냐 하면 자기 자신이 곧 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의 언어는 자기 자신 안에 또 다른 신의 이미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5) 종교와 과학이 전하는 주문수련
주문(呪文)을 읽는다는 것은 우주의 절대자께 소원을 간구하여 그 힘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반복적 기도 행위입니다.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 주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각 종교마다 어떠한 주문을 사용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 불교
불교는 주문의 백화점을 이룰 정도로 주문이 많습니다. 그 중 반야심경이나 천수경, 능엄경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은 불교의 핵심교리를 모아놓은 경전인데 불교 신도들은 이것을 반복해서 읽음으로써 깨달음을 추구하고 복(福)을 구합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는 “가는 이여, 가는 이여, 피안으로 가는 이여, 깨달아지리다.” 또는 “닿았노라 닿았노라 피안에 닿았노라 깨달음에 이르러 기쁘도다.”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천수주(千手呪)는 관세음보살에게 드리는 계청(啓淸) 형식으로 된 긴 주문으로 이 주문을 읽으면 천수관음의 자비와 공덕으로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나 죄업이 소멸되고 소원 성취한다고 합니다. 능엄주(楞嚴呪)는 천수주에 못지 않은 427구로 된 긴 주문으로 정성껏 읽으면 금강장왕보살의 여러 공덕으로 최고의 정변지각(正遍知覺)을 이룬다고 합니다. 그밖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나“지장보살”,“옴마니반메훔” 등의 수많은 진언(眞言) 들도 수 천년간 읽혀져 왔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절대적인 힘을 받아들여 높은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 기독교, 천주교
기독교의 주기도문(主祈禱文)도 역시 주문입니다. 기도문이 무슨 주문이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문이란 기도행위를 포괄하는 것이며, 정형화된 기도문은 모두 주문의 일종이다. 왜냐 하면 주문은 매우 짧고 간결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은 하느님을 찾고, 찬양하고, 진리의 실현을 바라고, 일상의 행복을 빌고, 시련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할렐루야”, “아멘” 등을 여러 번 반복해 부르거나 특정한 성경 귀절을 소리 내어 반복적으로 읽는 것은 성령의 감응을 받아 하나님의 이념을 실천하려는 명백한 주문행위 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신경(使徒信經), 천주교(天主敎)에서 읽는 성모송(聖母頌), 대영광송 (大榮光頌) 등의 기도문들도 소원을 간구하고 절대적인 힘의 도움을 바라는 주문입니다.
- 유교(儒敎)
사서삼경(四書三經) 역시 주문입니다. 그 가운데 주역은 무상하게 변하는 우주변화의 이치가 담긴 경전입니다. 경전이면 성인의 가르침이 담긴 책인데 주문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의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지할 사실은 어떤 교리나 성구도 반복하면 주문이 아닌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유교에선 경전 자체를 크게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어 아예 외어버리는 것을 공부의 원칙으로 삼기 때문에 그 행위자체가 주문을 읽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경전을 반복해서 읽으면 그 깊고도 심오한 뜻이 정신에 각인이 되고 그러면 마음이 밝아져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얻기 때문입니다. 수 천년 동안 수많은 유학자들이 이 방법으로 몸과 마음을 닦고 경전이 갖고 있는 깊은 뜻을 격물치지(格物致知)하여 활연관통(豁然貫通)했던 것입니다.
- 도교(道敎)
도교에서는 주문의 바다라 지칭할 만큼 주문이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정형화되어 수 천년 동안 전해 왔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구도자들이 궁극적인 도의 세계에 이르기 위해 주문을 사용해 왔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교는 수행방법과 지역에 따라 크게 좌도(左道)와 우도(右道)로 나뉘어 졌습니다. 좌도는 주문이나 부적을 사용하여 도의 세계에 들어가는 수련법이고 우도는 호흡을 통해 도의 세계에 들어가는 수련법을 말합니다.
이처럼 주문은 소리를 통하여 깨달음을 얻고 궁극적인 도의 세계에 들어가려는 종교적인 원리를 갖고 유불선을 통틀어 널리 사용되어 왔습니다.
6) 수련의 목적
개인의 의식과 우주 의식의 합일(合一)입니다.
* 주문수련
주송 --> 집중(集中) -->호흡과 감정의 통제(감, 식, 촉) -->마음(心)의 정화
-->진정한 자아를 깨달음
* 우리가 외우는 태을주에 대하여 도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敎示)하셨습니다.
『그대들이 지금 태을주를 외고 있으나 그 뜻을 알고 하느냐?
만사무기(萬事無忌,: 모든 일에 거리낌이 없음) 태을주,
포덕천하(布德天下,천하에 덕을 널리 폄)태을주,
소원성취(所願成就) 태을주니라.
그러므로 한 자, 한 음에도 성(誠), 경(敬),신(信)을 붙여 마음을 다져 외어야 태을천상원군(太乙天上元君)의 감응이 있으리라.』
『기도행사에는 마음가짐과 함께 장소도 중요하니 집에서 열 번보다, 회의실에서 한 번이 낫고, 회의실에서 열 번보다, 도장에서 한번이 나으니라.』
참조 : http://yeonmiso.com.ne.kr/bud/mantra.htm
힘을 가진 말, 만트라
프롤로그
진언은 가장 깊은 떨림(진동)입니다.
수행에 소리를 이용한다는 것에 대해 혹 경시할 분이 있을까 염려되어, 소리가 얼마만한 힘을 가졌는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학창시절 교실에서 놀다가 누군가 손톱으로 칠판을 긁을 때, 우리는 갑자기 깊은 곳에서부터 괴로움의 몸부림을 쳐대며 귀를 틀어막지만, 그 역겨운 소리는 손으로 꽉막아도 전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를 괴롭힌 경험이 있습니다. 소리는 사람을 죽일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좌도밀교의 흑마술사들은 열등한 영혼들을 불러내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 열등한 영적 존재들의 진동수를 알아내어 하나의 만트라(진언)로 만든 다음, 그 만트라를 사용해서 영적 존재들을 분해해 버릴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언(만트라)은 이런 진동의 법칙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언은 리듬 또한 중요하다는 걸 이해하실 것입니다.
지구 내부로부터 오는 듯한, 혹은
소리치는 천둥처럼 창공의 깊은 곳으로부터 오는 듯한 소리들은
모든 생물의 근원인 우주의 창조적인 떨림을 상징합니다.
우주가 바다라면,
인간의 삶은 오보에의 전주음처럼
바다의 광활함에 활기와 운율을 가져다주는 수많은 잔물결을 일으키는 미풍인 것입니다.
만트라(힘을 가진 말)의 비밀
만트라의 힘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는 고대 그리스 음악 이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어떤 특별한 성질을 가진 기본음을 알면, 그 음을 이용해 그 특별한 성질을 분해할 수 있다.
이것은 과학에 있어 진동(振動)의 법칙과 같다.
모든 유기체는 자기만의 고유한 진동수를 가지고 있다. 모래알에서부터 산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행성과 태양까지도 고유한 진동수를 가지고 있는데, 그 진동수를 알면 그것을 신비적으로 사용해 그 유기체를 분해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신에 해당하는 만트라를 알면, 그 신과 정신적으로 통신을 주고받는 법을 알게 된다. 무선 통신이나 텔레파시 통신과 유사하다.
신비술에 정통한 좌도 밀교의 흑마술사라면, 그는 원소들이나 열등한 차원의 영적 존재들을 불러내어 명령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영적 존재들도 각각의 진동수를 갖고 있는데, 이것을 알아내 하나의 만트라로 만들어버리면 흑마술사는 그 만트라를 사용해서 특정한 원소나 영적 존재들을 분해해 완전히 없애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소리는 절대적인 힘을 갖고있기 때문에 영적 존재들, 영적인 힘, 물리적인 힘 등의 특정한 진동수에 해당하는 만트라가 만들어지면, 그 만트라들은 절대적인 비밀로 지켜진다. 그리고 이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영적 스승들의 계보가 세워지고, 그 안에서 힘을 가진 말들을 지켜 가는 것이다.
쿤달리니 여신을 깨우는 특별한 만트라가 영적 스승에게서 정식으로 입문한 제자에게로 주어지면, 제자는 그 만트라를 소리내어 왼다.
그러면 여신이 깨어나고 명령을 받기 위해 그에게 나타나게 되는데, 이때 반드시 위대한 스승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깨어난 여신은, 그 만트라를 현명하게 사용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그를 파괴할 수도 있고 구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외부의 공기가 거친 소리들을 진동시킴에 따라 내부의 생명의 바람이 움직인다. 내부의 생명의 바람은 만트라의 소리에 따라 활동을 시작한다.
미묘한 신비의 소리를 포착한 쿤달리니 여신은, 그 신의 음악에 따라 척추 뿌리의 에너지 센터에 있는 왕좌로부터 몸을 일으켜, 차례차례 위쪽의 차크라들로 상승한다. 마침내 그 음악은 천 개의 꽃잎을 가진 연꽃을 가득 채우며, 거기서 그 음악이 울려나오고 절대의 스승이 그 음악에 반응한다.
어떤 신을 상상하여 視覺化(visualization)하는 것도, 그 신에 해당하는 만트라를 소리내어 발음하는 것과 똑같은 효과가 얻어진다. 단지 그 신의 본질적인 속성을 생각하는 또 다른 방법일 뿐이다.
만트라라고 해도 리듬이 맞지 않으면 아무 효과가 없다.
어떤 신의 만트라를 정확히 발음하기 위해서는 알맞은 리듬에 대한 지식 뿐 아니라, 육체가 순결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먼저 육체를 정화하는 만트라로 자신이 입과 혀를 깨끗이 한다.
그 다음에는 잠자고 있는 만트라의 힘을 깨우는 과정, 또는 잠자고 있는 만트라의 힘에 생명을 주는 과정을 통해서 만트라 자체를 정화한다.
만트라의 신비한 힘은 싯디(siddhi)라고 하는 초능력을 낳는다. 이러한 힘을 가진 聖者를 싯다(siddha)라고 부른다. 싯디는 원뜻이 '목표를 이룸'이지만, 여기서는 요가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능력들을 의미한다.
이 능력들은 수행자의 성향에 따라 좋은 목적을 위한 백마술(白魔術, white magic)로 또는 사악한 목적을 위한 흑마술(黑魔術, black magic)로 쓰일 수도 있다.
심령이 개발을 통해 얻어지는 결실은 같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이 시점에서부터 우도와 좌도로 갈라진다. 한쪽은 영원한 自由의 길로 가고, 다른 한쪽은 노예(奴隸)의 길로 떨어진다.
- 류시화 역, 티벳 사자의 서(정신세계사)에서 발췌
티벳인들의 옴 마니 반메 훔
일상 생활 중에 행할 수 있는 명상의 또 다른 형태로 만트라를 반복하는 아주 단순한 방법이 있다. '옴 마니 팓메 훔'(OM MANI PADME HUM)은 자비를 비는 만트라로써, '옴 - 연꽃 속의 보석이여! - 훔'이라는 뜻이다. 이 만트라는 만사 형통을 기원하는 뜻으로 통용된다. 티벳인들은 우주 속에 충만하게 깃들이어 있는 아발로키테스와라의 사랑과 자비의 힘으로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만트라를 외운다.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를 돕기 위해서도 이 만트라를 외운다. 따라서 이 만트라의 울림 속에는 긍정적인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다. 티벳 사람들에게는 마음속으로 또는 낮은 목소리로 '옴 마니 파드메 훔'을 외우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그들은 이 만트라를 외울 때, 만트라와 아발로키테스와라(觀世音菩薩)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피부로 느끼는 법을 배웠다.
만트라를 반복하면 일상적인 의식 작용이 정지하고 의식의 지평이 만트라의 흐름과 하나가 된다. 이 만트라를 심장 차크라를 상징하는 바퀴에 새겨진, 보석으로 장식된 여섯 문자와 연결하여 시각적으로 상상하는 수행자도 있다. 그들은 입으로 '옴 마니 파드메 훔'을 반복하면서, 보석으로 장식된 여섯 문자에서 다섯 지혜를 상징하는 무지갯빛이 비쳐 나와 온 우주 만물에 은총을 베푸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상상한다. 가슴에서 발산하는 다채로운 빛깔의 사랑 에너지의 흐름과 만트라의 흐름이 하나 될 때까지 그렇게 한다.
다른 만트라도 같은 방법으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만트라의 목적은 마음속에 긍정적인 흐름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 만트라를 반복하는 훈련은 특히 죽음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그 가치가 빛난다. 이 수행을 하면 모든 것을 저절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힘이 생기며, 간섭하지 않는 힘이 있으면 죽음에 임박해서 또는 중간계로 옮겨가는 중에 당황하지 않고 초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일상 생활 자체를 영적인 수행으로 생각하는 훈련도 중요한 명상 수행이다. 설거지할 때는 그릇 씻는 행위를 마음의 탐착을 씻어 내는 영적인 수행과 연결시켜, 설거지 자체가 기도가 되게 한다. 집을 지을 때는 마음속에 천국을 건설하는 일과 연결시킨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낯모르는 사람을 볼 때는 붓다의 눈으로 붓다의 심정을 가지고 바라본다. 문을 열 때는 깨달음의 문을 연다는 심정을 갖는다.
죽음과 삶의 영적인 목표에 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짐에 따라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은 앞에서 설명한 가정이나 직장을 비롯한 현실 생활에 초점을 맞춘 일반적인 준비에 만족하지 못하고 삶 전체를 바꾸기를 원한다. 그들은 이 땅에서의 삶 역시 중간계 과정이라고 여기고, 삶 전체를 바쳐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를 가속시키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아제아제바라아제와 옴마니반메훔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이는 영혼의 노래이다.
절대 공으로서 부처도 없고 스승도 없는 오직 유아독존의 샴막 삼보리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 영혼의 노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길을 걷는 사람이 부르는 노래이다.
옴마니 반메훔 !
이 노래는 정이 흐르고 사랑이 흐르고 따스함이 깃들어있는 보석 같은 노래이다.
옴, 연꽃 속의 보석이여! 훔
연꼿 속에 피어오르는 보석은 무진장한 지혜와 무한한 자비가 들어있다.
이 단순한 리듬 속에 깃든 그 한량없는 보물들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있는가?
그래서 우리는 노래를 부를 뿐, 진언을 섣불리 해석하지 않는다.
해석을 시도하면, 이 세상 다하도록 언설을 늘여놓아도 노래 속에 깃든 무한한 의미가 한정되어버리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느 분의 댓글에 대한 답글
> 아니 이럴수가. 내가 아는 것과 틀리네
>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열반의 언덕으로...이고
> 옴 마니 반메 훔은 육도 중생을 칭함인데 .
> 내가 잘못 알았나? 님이 잘못 알았나?
> 캬 ......... 반야심경의 마지막 발원을 넘 좋아요
> 근데 관세음보살 육자 대명왕진언을 너무 서민적 해석 하셨당
> 난 사이비입니다 ....... 우하하하
당신이 옴마니 반메훔을 염송하면서 육도윤회의 문이 닫힌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다면,정말로 그리 될 것입니다.
정말로 육도윤회의 문은 닫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다면 그리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겨자씨만큼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산을 저리로 옮기라 하여도 그리 될 것이다"는 말은 진실입니다.
진언(만트라)은 산스크리트어로 되어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는 신의 언어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옛날 성자들이 깊은 삼매에 들어 몸과 마음에서 진동하는 미세한 떨림들을 소리로 포착하여 만든 문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언은 뜻풀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리로 내어 내 육신과 마음을 진동을 통하여 깨어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옴 마니 반메훔은 티벳사람들이 한시도 입에서 떼어놓지 않는 진언입니다.
그러면서 관세음보살님의 그 자비롭고 지혜로 충만한 마음을 닮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 자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관세음보살때문에 그 만트라에서 느끼는 제 필링은 따스한 사랑입니다.
대신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 스바하'는 오온이 모두 비어있음을 보는 고독 속의 명상이 떠오릅니다.
여기서 느끼는 제 필링은 지혜입니다.
진언은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번 노래로 불러보세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률이 있다면 거기에 실어서 노래해보아도 좋습니다.
'안녕 어린왕자야'라는 방에는 그러한 제 노래를 쓴 글이 '옴 마니 반메훔'이라는 제목으로 게시되어 있습니다.
해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 속에서 떨리는 미세한 진동을 느껴보십시오.
이것이 진짜 만트라입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말에도 진정한 믿음이 실린다면, 그리하여 당신의 온 마음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이 소리에 집중되어 발성되어진다면 이것도 훌륭한 만트라입니다.
좋은 나날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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