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bloter.net/wp-content/bloter_html/2012/05/111068.html

집단지성으로 지도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 마을지도가 아니라 세계지도를 비전문가들이 만든 ‘오픈스트리트맵’ 이야기다.

오픈스트리트맵은 2005년 설립된 영국의 비영리기구 오픈스트리트맵재단이 운영하는 지도 서비스이다. 이 지도는 네이버나 다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내비게이션의 지도 등과 다른 점이 있다. 기업이 아니라 이용자가 올린 데이터로 만들어진 지도라는 점이다. 게다가 지도 데이터를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2.0을 적용해 저작자를 표시하고, 2차 저작물에도 오픈스트리트맵과 같은 라이선스를 적용하면 누구나 가져다 쓰게 했다(CC BY-SA). 지도API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API 호출 횟수에 따라 비용을 청구하는 걸 떠올리면 참으로 독특하다.

SBS가 주최한 ‘서울디지털포럼’ 참석차 방한한 미켈 마론 오픈스트리트맵 인도주의팀장이자 이사회 멤버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누구나 지도를 만들 수 있게 됐다”라며 오픈스트리트맵을 소개했다.

미켈 마론 오픈스트리트맵 인도주의팀장

▲미켈 마론 오픈스트리트맵 인도주의팀장

“지도는 힘의 도구입니다. 많은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도로 우리는 커뮤니케이션하고, 이곳에 어떠한 문화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지도 제작은 정부나 군사 기업 등 힘이 있거나 돈이 있는 소수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이제 지도를 만드는 데 정부나 기업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되는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지도를 만들기 위해 일생을 건 김정호 선생이 들으면 가슴 뜨거워질 말이다. 지도를 사용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지도를 만들어 제공하는 곳은 소수일 수밖에 없다. 소수에게 정보가 몰렸으니, 그 소수는 자연스럽게 힘을 얻었다. 무료로 지도를 보여줘도 지도 속 정보를 수정하고 편집하는 권한은 바로 그 소수만 가진다.

미켈 마론은 포스퀘어와 애플이 오픈스트리트맵을 쓰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힘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스퀘어는 올 2월29일 웹사이트 지도 서비스를 구글 대신 오픈스트리트맵을 쓴다고 밝혔고, 올 3월8일 오픈스트리트맵재단은 아이폰, 아이패드, 데스크톱용 아이포토의 지도 서비스에 오픈스트리트맵이 쓰인다고 발표했다. 애플은 아이포토의 지도 서비스로 오픈스트리트맵 외 다양한 지도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다.

오픈스트리트맵

▲오픈스트리트맵

물론, 구글이 지도API를 무료에서 유료로 전환하며 비용 문제가 불거진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그 이유보다는 원할 때 지도 정보를 수정하고 CCL을 준수하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오픈스트리트맵의 특징이 두 회사를 매혹했으리라.

“사실 오픈스트리트맵을 쓰는 데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포스퀘어는 구글에서 오픈스트리트맵으로 전환하며 인프라스트럭처와 시간, 기술 등에 투자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포스퀘어는 구글보다 오픈스트리트맵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술적인 자유를 원했기 때문이겠지요.”

기술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은 사용자가 입맛대로 지도를 수정할 수 있다는 걸 말한다. 포스퀘어를 예로 들어보자. 포스퀘어는 오픈스트리트맵의 지도를 그대로 들여오지 않았다. ‘맵박스’라는 업체를 통해 지도의 색과 글꼴 등을 바꿨다. 서비스 특색에 맞게 지도 색을 무거운 톤으로 바꾸거나 화사한 지도로 만들 수 있다. 미켈 마론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포스퀘어가 구글의 정책에 휘둘리지 않고 이용자에게 지도를 보여줄 방법으로 오픈스트리트맵을 택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오픈스트리트맵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은 지도를 원했을 것이다.

이용자가 만드는 오픈스트리트맵의 철학은 다양한 지도 제작으로 이어진다. 자전거 지도나 운송로, 또는 해양지도도 이용자들이 만들 수 있다. 네이버나 다음, 구글이 만들어주기를 기다렸다 쓰는 게 아니라, 이용자가 필요한 지도가 있으면 직접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오픈스트리트맵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기본 지도와 자전거 지도, 운송 지도를 이용할 수 있고, 오픈스트리트맵재단이 만든 ‘오픈시맵’은 항해도를 서비스한다. 오픈시맵도 오픈스트리트맵과 마찬가지로 이용자들이 올린 항로 정보와 바닷속 지형 정보로 제작된다.

오픈시맵

▲오픈시맵

오픈스트리트맵이 기업과 정부에 쏠린 지도 제작 권력을 무너뜨리는 것 같지만, 협력도 맺고 있다. 미켈 마론은 “여러 정부가 오픈스트리트맵에 관심을 보이고 협력하려고 한다”라며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는 오픈스트리트맵재단과 지도 정보를 공유한다”라고 말했다. 남아공 정부는 오픈스트리트맵 덕분에 자국의 지도 데이터를 업데이트하고 오픈스트리트맵은 남아공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로 해당 지역은 더 정확하게 서비스할 수 있다. 야후와 마이크로소프트도 오픈스트리트맵과 관계를 맺고 있다. 야후재팬은 2011년 오픈스트리트맵에 지도 정보를 기부했다.

지금 오픈스트리트맵에 등록된 이용자는 54만명에 이른다. 그중 3~5%가 열혈이용자로 오픈스트리트맵에 수시로 드나들며 지도 정보를 만든다. 나머지 대다수 이용자는 종종 찾아온다. 위키피디아도 1% 이용자가 주축이 돼 정보가 쌓인다고 하니 오픈스트리트맵 이용자들이 조금 더 활동적인 모양이다.

미켈 마론은 “나는 밖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기술에 대한 열정이 있는데, 오픈스트리트맵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한다”라며 “특히 열혈이용자들은 ‘테키’(괴짜를 의미하는 ‘긱’과 비슷한 뜻)들로 호기심이 많고 이런저런 것들을 수집하는 성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자 지리학자인 미켈 마론과 달리, 대다수 이용자는 지도 쪽에서는 비전문가이다.

측량기술도 모르는 이용자들이 오픈스트리트맵에 정보를 쏟아내도록 오픈스트리트맵재단은 이용자끼리 오프라인 모임을 여는 걸 독려한다. 오픈스트리트맵에 이바지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는 사람, 심화지식을 나누고 싶은 사람 등 지역마다 조직을 만들어 콘퍼런스나 파티를 열면 오픈스트리트맵재단이 후원하거나 일정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미켈 마론은 “오프라인 모임에서 여러 언어로 서비스하는 법이나 비영어권에서 필요한 사항 등에 관한 정보를 나눌 수 있다”라며 “한국에도 오픈스트리트맵 커뮤니티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만나고 싶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오픈스트리트맵재단은 상근 직원 없이 자원봉사자들이 꾸리고 있다. 미켈 마론도 재단 이사회 멤버이지만, 자원봉사자이다. 재단의 1년 예산은 약 10만달러로 서버와 하드웨어 관리비, 콘퍼런스 지원비, 법무 서비스로 쓰인다. 이 예산은 기부금과 투자금, 협력 관계를 맺은 회사에서 내는 비용으로 충당한다.

Posted by Happynow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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